본문 바로가기

Book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 광해군 일기 - 경험의 함정에 빠진 군주 (박시백)

11 APR 2010


인사의 실패가 두드러지는 외로운 왕


 극단적인 양극인 폭군이라는 평가와 현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광해군에 대한 내용이다. 책을 읽어봐서는 쿠테타 세력에 대해서 정확한 성격을 알 수 없으나(다음 인조에 나오겠지만) 이책만 봐서는 원한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집권후반기에 들어가서는 좀 나태해지지 않았나하는 느낌이다.


 


 광해군은 적자가 아니라는 최대 약점이 있고, 후원 세력이 될 어머니가 빨리 돌아가시는 바람에 정치적 기반이 무척이나 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특유의 품성으로 왕자 시절을 지내오면서,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을 통해 부왕인 선조에 비해 뛰어난 업무 추진 능력을 보여주며 당당한 후계자리를 굳힌다.


 


 왕세자가 되고 난 후의 왕이 되기 까지도 고난의 세월이었다. 왕과 세자가 대립할 때 세자가 2인자로서의 처신을 잘 해야 하는데, 그 세월이 너무 길고 외로웠을 것으로 보인다. 끈기있게 참고 기다리다 왕이 된 것이다.


 


 왕이 된 이후에는 욕망을 쉽게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수많은 옥사를 주도했으며, 정적이라 할 수 있는 왕자들을 제거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왕궁을 건설하는 토목공사를 일으켜 국력을 낭비한 면이 있다.


 


 광해군의 최대 장점이자 치적이 중립외교이다. 당시 모든 구성원들이 소중화를 자처하여 명나라에 사대하는 분위기였지만, 왕 홀로 실리외교를 주장할 정도로 기존 프레임을 벗어나 보는 매우 다른 시각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국방력을 키우는 어떤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개혁정치라고 할만한 내용이 없는 보수적인 왕으로 보인다.


 


 광해군을 보면서, 광해군은 인사에 실패한 왕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왕권을 강화했지만 결국 그것은 이의첨등의 특정 신하들의 권력을 강화시켜 주는 효과를 보았으며 특정 신하의 권력 독점과 장기화로 쿠테타가 일어나도 알지 못할 정도로 장기 집권에 따른 무능을 보여준다는 느낌이다. 선조가 비록 찌질이 왕이라고 할 지라도 아들 광해군보다는 인사를 더 잘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나오는 명재상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원익,이항복,이덕형이 이들이다. 이들이 당파인 서인,남인,북인(소북,대북)으로 나누어지는 가운데에서도 파당에 휩쓸리지 않고 국익을 위해 공명정대의 모습으 볼 수 있다.


 


 유성룡에 대해서 이 분이 이순신을 천거했다는 부분이 거듭 의심이 간다. 이순신을 알아봐서 등용한 것이 선조였으며, 유성룡을 비롯한 조정 신료들이 거의 모두 이순신을 옹호했다는 증거는 없는 것 같다.

 


4 JUL 2018


 광해군, 실패한 왕이다.


 인조가 서인의 왕으로 본격적인 서인 시대에 들어간다면, 아마 그 시초를 제공한 것은 광해군일 것이다. 북인 정권이였다. 광해군 이후 북인이 살아나지 못했다.


 그가 그다지 좋지 않은 임금이였지만, 뒤의 임금이 워낙 덜 떨어진 임금이여서 좀 낫고, 앞의 임금은 워낙 아들을 미워했기에 동정이 간다. 한마디로 조선의 많은 나쁜 임금 중에서 최악으로 꼽히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