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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송환 (김동원)

14 NOV 2007

"송환"이라는 유명하지만 무거운 주제의 다큐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상계동 올림픽"으로 유명한 다큐 감독 동네인 봉천동 산마을에 비 전향 장기수 두 분이 석방되어 만나게 되는 92년 부터 시작된다. 그 두 분의 성함은 조창순,김석형씨이다.

조창손씨는 1962년 남파 간첩선의 선원으로 일하다가, 접선 장소에서의 기습에 의해 체포되고, 무기징역역을 받는다. 그때 그를 포함하여 다섯 분이 체포되어 1분은 감옥에서 병사하고, 두 분은 70년대에 전향하고 두 분은 비전향 상태였다. 조창손씨는 비전향장기수로 출옥하여 전에 나오셨던 분을 만난다. 아래 포스터에 나오시는 분이 그 동료분 중 한분이신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정말 순박하신 분이다. 전향했다는 이유로 아직 북으로 못 가시고 계시는 것으로 안다. 어쨌던 조창손씨는 2000년 9월 다른 동료분 62분과 함께(총 63분) 북으로 송환된다. 그 후 부인과 두고온 두 자식을 만났고, 감독과 나이는 어린 또래의 자식은 또 두순자를 두고 있는 것이 나온다.

북으로 송환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이별을 낳는 것이다. 나도 이 영화를 보면서 북으로 송환되기 전의 남쪽에 계신 지인들이 슬피 우는 것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아직 왕래의 자유 및 통신의 자유가 없는 상태에서의 북으로의 송환은 결국 남쪽에 남아있는 남쪽 친구들에 대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감독은 다행히 2001년 북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나, 국가 보안법 수사 관련으로 갈 수 없게 된다. 그의 후배가 찍어온 조창순씨의 인터뷰를 보면, 감독을 아들 처럼 생각했다고 한다. 이 영화이후 감독은 북한을 4박5일동안 방문하지만, 조창손씨 건강이 안 좋아 결국 그들은 만나지 못하고 만다.

또 남파 간첩이 아닌, 전쟁 포로분들도 나오시는데, 그중 대표적인 분이 김선명씨와 안학섭씨이다. 1995년에 두분이 풀려나는데, 김선명씨가 당시 최고 장기수라고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이분은 양평 출신의 남쪽 인사인데, 가족도 남쪽에 있지만 2000년 9월 북으로 간다. 안학섭씨의 경우는 김선명씨 보다 조금 감옥살이가 짧은 관계로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따질것은 따질 줄 아는 까칠한 사람이다. 이 분은 2000년 9월 직전에 결혼을 함으로서 남쪽에 남게된다. 이 영화후 감독과 안학섭씨는 2000년대 중반 북한을 다녀오게 된다.

냉전시기와 남북대결구도속에서 적국의 간첩이지만, 당시 2000년에는 30년이상 감옥 생활을 하셨고, 또 거의 힘이 없어지는 노인분들이기 때문에 인도적인 차원에서 송환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북 체제가 다르고해서 왕래의 자유가 아직은 어렵다. 전쟁이 종료된 지 55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그때 헤어진 가족들을 보면 잠깐 안보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것이 10년,20년이 지나 이렇게 될지는 몰랐다고 한다. 남북관계가 좀 더 진전되어 이산가족 문제와 편지와 전화를 주고 받는 세상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아래사진은 김 감독과 조창손씨와 감독의 두 자식들, 조창손씨는 아침잠이 없어셔서 일찍 집에 오셔서 아이들과 많이 놀아 주셨다고 한다. 조창손씨는 송환되기 전 동네 아줌마들에게 주려고 반지와 목걸이를 사서 나눠주셨다. 인정 많으신 분이다.




22 SEP 2015

간첩과 보낸 12년 기억, 이미 오래전에 지나간 기억이지만 그리고 전적으로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어느 편을 들 수 없는 입장이지만, 최소한 장기수에 대해서는 좀 더 포옹력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물론 이미 20년전에도(1993) 이인모 노인을 송환했으니 잘 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도 과거 분단시대에 고통이다. 마지막 노인 세대들의 이산가족상봉이 잘 이루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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