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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지식인, 그들은 어디에 서 있나 (경향신문사 특별취재팀)

1 NOV 2008

성장,시장,미국에 너무 몰두한 대한민국의 지식인의 모습

 경향신문사가 기획시리즈로 지식인의 죽음을 연재하고 또 여러 출판사들이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던 좋은 시리즈인 것 같다. 기획팀이 교수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정치와 관계에 대한 많은 자료를 실어 준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책을 읽으면서 크고 크고 크게 느꼈던 것은 미국에 너무 지나친 집중이라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박사하는 것이 주류이고, 그 외는 아류라는 것이 너무 가슴아팠다. 특히 나 같이 미국물은 구경해보지 못하고, 독일,프랑스,북유럽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는 한국사회에 대해서 잘 모르는 구나를 자각시켜 주었다.

 한국사회가 87년을 지나 소위 87체제를 20여년 지나오면서 참 많은 것이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학문이 다양화지고, 지식의 방향이 다양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실용이라는 것에 집착하여, 대학교의 철학과가 없어진다고 하니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인간의 물질이 풍부해진다고 정신이 풍부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쨌던 한국인의 광기이고, 지식인의 광기는 성장,시장,미국 이 3개의 단어로 요약되는 듯 하다.

 지식인이라는 것이 주로 정규 대학과정을 수료한 박사 학위 소지자로 지칭이 되는 듯 하며, 이 말은 곧 교수로 더 줄일 수 있어보인다.(이 시리즈에서는) 결국 지식인의 죽음은 대학의 죽음과 혼돈된다. 대학이 시장논리로서 움직이고 공공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문제이다.

 또 지식인은 정치권력과 결합한 형태로 나타나고, 경제권력에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선거철만 되면 소신하고는 다른 선거 캠프에 줄을 서고, 삼성을 필두로 하는 대기업 재벌에 대해 아무런 비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김상조 교수 혼자만이 고분분투할 뿐이다.

 지식인의 죽음을 여러갈래로 볼 수 있지만, 긍정적으로는 민주화가 되었으므로 87년 이전의 지사적 지식인의 대표인 리영희 백낙청 김지하 이런 분들의 역할이 사라진 것이며(감사드립니다.), 나쁘게 말하면 공공성의 사회의 공기를 바꾸는 것이 아니고, 시대에 영합하는 전문가(도덕하고는 관계없는)의 시대로 갔다. 한편으로는 대중지성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건 또 다른 형태로 다루어야 할 것 같다.

 사족으로 내가 학교 다닌 80년대 말을 생각해보면 교수라는 직업은 철밥통이었고, 논문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직업이었던 같다. 지금은 많이 변했고, 교수라는 직업도 안전한 직업군이 아니라고 하니, 잘 상상이 안간다.

 학술진흥재단이 공룡인것 처럼 느껴지고, 장단점을 가지는 것 같은데, 논문으로 먹고 살고, 연구비를 지급받는 직업을 갖고 있지 않아, 역시 크게 느낌이 없다.

 결론으로 경향신문사가 발로 뛰어 <열망과 절망>에 있어 새 책을 내 주어 감사하지만, 지식인의 죽음의 실체를 느낄 수 없어 아쉽다. 지식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의해야 할 지 모르겠고, 지식인의 죽음인지 대학의 죽음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20년간의 대학과 연구소의 흐름과, 지식인 사상표, 성장,시장,미국에 몰두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해 주어서 만족한다.

 

27 JAN 2016

민주화 20년 즈음에 나온 민주화 20년의 학자들에 대한 내용이다. 다시 10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별 의미없는 내용이라고 할 수도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의 시대가 신자유주의 시대였고, 세상의 흐름이 신 자유주의로 가는 것 이었다. 그래서 학문의 방향도 성장, 시장, 미국(글로벌)로 가 버렸다. 여기에 주로 등장하는 대표 단체가 학술진흥재단인데, 돈을 좌우하고 평가를 좌우하는 만큼 대단히 큰 기관이고 이것에 대한 장단점이 존재하는 것 같다. 논문 발표가 중요하고, 그로 인해 연구비를 지원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학문도 자본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

이제 민주화 30년이고, 이명박, 박근혜 보수 정권의 10년을 지나고 있다. 이 즈음에 다시 지식인, 그들을 평가해볼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