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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국채 보상 기념 공원 (2009)

12 MAY 2009

  오래만에 가본 대구였다. 고등학교 등을 여기에서 나왔는데 자가용으로만 다니다보니 대구 중심가를 가볼 일이 없었다. 소위 시내를 지나서 경북대 부속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못 보던 공원이 있었다. 국채 보상 기념 공원이라고.

 병원에서의 일을 보고 공원으로 가 보았다. 예전에 이 자리가 무슨 자리였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하 주차장은 기억이 나는데, 여기가 대구 시립 도서관이었나, 세월이 지나가니 이제 기억마저도 가물가물하다.

 일단 두 인물(애국지사)의 흉상이 있었다. 서상돈 김광제 두분이다.

 

 

 

 대구 광문사 사장 김광제와 부사장 서상돈이 1907년 1월 29일 국채 상환을 위해 반일 금연운동을 주창했다.

  "이천만 동포가 석달만 담배를 끊어 한사람이 한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서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이라"

  여기에 대구 남일동 부인회에서 은반지,은장도를 내어서 국채 보상 운동은 여자들도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이 운동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실패의 원인의 대중적 민족주의의 앙양을 위험시한 통감부와 친일파가, 보상금 사기횡령사건을 날조 해 이 운동에 오명을 씌웠기 때문이다. 운동의 중심인 대한자강회를 해체시켰고(8월 20일) 지도자 양기탁과 윤웅렬을 투옥시켰다. 한편 차관만 상환하면 독립을 지킬 수 있다는 안이한 정세 인식도 한 원인이었다. (여운형 평전1 에서 인용)

  34.2도의 100년만의 더위라는 5월 초순의 날이었지만 나무 그늘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또 동성로가 바로 옆이라 연인들이 놀기에 좋은 장소이다. 사실 대구에 공원이 몇개 없는데 이런 것이 하나 있으니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놀랐던 것은 달구벌대종이었는데, 재야의 종을 여기에서 친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보신각만큼 사람이 모이는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대구에서도 재야의 종 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25 APR 2016

국채보상운동의 실패를 보면, 요즘도 좋은 취지의 운동이 흑색선전 등으로 왜곡되어 실패하는 경우를 보게된다. 원래의 좋은 취지를 가지고 진행을 하더라도 항상 경계를 해야하고 추진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어떤 사건을 볼 때도 항상 이면을 보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에 맞는 견문을 넓혀야 한다. 요즘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예로 별로 논란이 될 수 없는 재난인 세월호 사건의 경우에도 과연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고, 또 다양하게 주장하는 것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과, 다음에 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않게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