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JUN 2008
이미 세월이 많이 지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또 왜곡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1987년 6월 10일은 기억이 나네요.
그날은 체육관에서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다음 대통령 후보가 선출되는 날이었지요. 민정당 차기 후보는 노태우 당대표였고 여당 대통령 후보는 또 다른 체육관 선거에서 99% 이상의 찬성표로 대통령이 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죠. 그 전당대회가 있는 날, 대회가 이루어지는 날 오후 6시에 국민 대회가 거행되는 거였죠.
당시 전당대회가 이루어지는 체육관 근처에도 최류탄이 터졌고 눈물 좀 흘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는데, 그것도 공대생이었는데, 그날 오후 6시에 시험이 있었어요. 우리 과 애들이 그 교수님과 맞짱을 뜨거나 거부할 만한 권위를 가지지 못해 6시에 시험을 치게 되었어요. 그 교수님은 우리과 교수님도 아닌 분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시험을 칠 수 밖에 없는 분위기였어요. 어쨌든 비장한 분위기에 (남들은 학교를 벗어나서 도심에 진출하여 운동을 하는데, 시험이라니 ...) 시험 치기 전에 열사들에 대한 묵념을 올린 후 비장한 마음으로 시험을 쳤습니다. 참 시험전에 묵념이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는 일인데, 당시에는 매우 진지하게 시험을 치렸죠.
사실 그해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4월 13일 호헌을 주장하는 바람에 바람 잘 날이 없었어요. 그래서 중간고사도 안 치르고, 또 6월 10일 이후의 모든 시험도 치르지 않고 한 학기가 지나갔죠.
87년은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죽고, 또 연세대생인 이한열 학생이 최류탄에 맞아 죽고(오늘 6월 9일)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지만, 87년이란 기회를 놓쳐 버리면 다시는 직선제 개헌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가 있었죠.
어쨌든 6월 항쟁으로 전두환 항복선언이 629선언도 나오고, 현재의 체제인 87체제가 성립되었죠. 629이후 여름에는 눌려있던 노동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죠.
당시 우리들은 묵념을 올리고 시험을 치렀지만, 그 다음날부터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요. 당시에는 동맹휴업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는 것 같은데, 다들 거리로 나가서 시위를 했었죠. 10일부터 29일 사이에 이루어졌으니 불과 20일 사이에서 거리 투쟁이 벌어졌습니다. 지금의 촛불 집회는 벌써 한달이 넘어가고 있네요.
어쨌든 빼았겼다고 생각되었던 노태우 군사 정권이었지만, 그후 김영삼 문민 정부, 김대중 국민 정부, 노무현 참여 정부를 지나면서 대한민국은 발전되어 온다고 굳게 믿었는데, 어찌 다시 6월 10일이라는 것인가요?
후일담이고 이미 21년이 지나버린 그 옛날을 다시 끄집어 내는 것은 무슨 힘인지 모르겠습니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요? 참 어이없는 일입니다. 내일은 6월 10일이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역사가 진행될 지 알 수 없지만, 설마 87년 6월 항쟁이 다시 오고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이 다시 오는 것은 아니겠죠.
그동안 대통령에게 조금의 바램이 있었는데, 여러가지 인식과 말씀에서 일말의 기대를 포기했습니다. 오직 바른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대통령의 독주와 막무가네를 견제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은 잊어버렸어야 할 6월 10일 입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승리하였으면 합니다.
17 NOV 2015
한때는 386세대로 불렸고, 이제는 꼰대가 되어버렸다. 젠장.
1987년 6월 항쟁에 정말 열심히 참가한 세대이고, 현재 민주화에 이바지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저냥 하다.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지키지 못하고,
경제 민주화에 대해서도 어느 순간 기득권 세대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86세대라고 불린다. 제발 소리 좀 내고, 초심으로 열심히 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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