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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 - 정이현

junemustgo 2021. 2. 9. 14:22

22 AUG  2010

이 작가가 말랑말랑한 사랑 이야기와 도시의 30대 여인들의 감정 묘사에 능한 줄로만 알았는데,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이 작가의 단편 소설이 주는 힘을 느낄 수가 있었다. 도시인의 삶에 대한 이중적인 모습이며, 가난한 서민에게 따뜻한 시선을 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먼저 <삼풍백화점>이다. 삼풍백화점은 강남의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백화점이었지만, 어이 없게도 무너진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언론을 통해 삼풍아파트 주민들이 장 보러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이야기 등 주로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을 수가 있었지만, 정작 점원들에 대한 슬픈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비극 속에서 사라져 갔지만, 주목을 받지 못한 삼풍백화점의 종업원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동안 관심 없었음을 깨닫고 반성하게 된다.

 <삼풍백화점>에 나오는 주인공은 강남(딱봐도 삼풍아파트 주민임을 알 수 있다.) 출신의 젊은이이고, 친구의 경우에는 강북에서 대학 진학도 하지 않은 채로, 의류점에서 일을 하는 직원이다. 그들이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다는 인연과 강남에 있는 백화점에 근무한다는 우연으로 만나서 두 사람의 우정을 나누게 되지만, 한 번의 결정적인 사건인 백화점 아르바이트 근무로 인해서 서먹한 관계가 된다.

 주인공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감정, 삼풍백화점의 비극을 일상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주변을 도저히 참아내지 못한다. R이 진심으로 살아 있기를 바란다.

 
 표제작 <오늘의 거짓말>은 인터넷에 상품평을 좋게 작성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거짓말로 밥을 먹고 살고 있고, 그녀의 어머니는 김밥 체인의 주인공이지만 종업원들은 항상 거짓말과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한마디로 불신의 사회이다. 또한 만나는 남자 친구에게도 어느 정도 속이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79년에 돌아가신 선글라스의 사나이가 나오는 것이 어떤 정치적인 코드인지는 모르겠지만, 순진한 이 군인은 인터넷 평을 보고 제품을 구입했다. 즉 속아서 산 것이다. 결국 거짓을 끝내기로 하고, 본인의 ID로 정직한 평을 작성한다. 하여간 속고 속이는 거짓말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어금니>에서 보듯이, 강남 상류층 사람들은 결코 도덕적이지 않고 위선으로 가득차있으면서 겉으로는 평화스러우나, 속으로는 불신하면서 살아간다. <비밀과외>에서도 80년대의 불법과외에 대해서 다루고 있으나, 결국 불신과 가족의 해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집을 통해 이 작가의 단편의 힘을 보게 된다. 김영하 소설가의 말대로 서울 강남 사람들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이 탁월하며, 이 탁월함을 느끼게 해 주는 소설이다.

 

9 FEB 2021

 

"달콤한 나의 도시"등 달콤한 이야기를 주로 쓴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소설집에서 보여준 정이현은 작가로서의 힘이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소설 읽으면 찝찝해야 하는데, 충분하게 여운이 남은 좋은 소설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