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누도 잇신 2003)
16 NOV 2009
(스포일러 듬뿍)
이 영화가 제일 좋은 점은 마지막 장면이다. 조제가 혼자 나들이를 할 수 있는 장면이다. 얼마나 좋은 마지막 장면인가!
회상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했다.
주인공들이 만나는 장면에서 칼 한번 휘둘러 주는 것도 매력이지만, 역시 인연은 밥 먹고 가라는 한 마디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고생도 했는데 밥 먹고 가지 이 한마디에서 벽이 깨어지고, 내부의 세상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 같다. 자 꼬시고 싶으면 한 마디 하시라. "밥 먹고 가지." 응용 버전으로 "라면 먹을래요?"의 <봄날은 간다> 대사 참고하면 되겠다.
주인공 여자는 갇힌 세상에 사는 여자이다. 유일한 낙이 산책을 하는 것인데 이것 조차 쉽지 않다. 유일한 보호자인 할머니와의 산책은 항상 숨겨질 수 밖에 없고, 세상 편견 가득한 세상에서는 모험이다. 왜 주인공 여자가 칼을 휘둘려야 하는 지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이름이 뭐냐? 조제. 할머니는 쿠미코라고 부르던데.)
조제는 책으로서 세상을 배우는 사람이다. 유일한 보호자인 할머니를 통해서는 세상을 볼 수가 없다. 할머니가 보호하려는 의도이겠지만, 세상과는 차단되어 있다. 그래서 세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소통 수단은 남들이 버린 책을 읽어가며 세상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남이 버린 책을 읽는 것은 한계가 있고, 자신이 원하는 사강의 속편을 읽을 수가 없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알겠지만 <한달 후 일년 후> <Dans un mois dans un an> 이다. <신기한 구름>(멋진 구름)(Les erveilleux Nugages>이 속편이라고 하니 참고할만 하다. 일본에서도 절판되어 헌 책방에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있을까? 아마 없을 거다.
그나마 세상을 향한 소통이 열리는 열쇠가 되고 있는 남자 친구 츠네오와의 소통은 할머니에 의해 막혀버린다. 그래서 결국 헤어진다. 하지만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제2부가 시작된다.
혼자 남겨진 조제는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결국 남자친구는 조제와 같이 있기로 한다. 그들의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다. 호랑이는 시베리아(한국)산 호랑이로 보인다. 조제가 남자친구가 생기면 제일 무서운 것을 보는 것이 평소 생각이여서 동물원에 가서 본다.
1년이 지난 후의 내용이다. 츠네오는 조제를 부모님에게 소개시켜 주어야 하나 자신이 없고, 다시 우연히 옛 여자친구를 만나게 되고, 그렇지만 부모님에게 소개시켜 주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첫번째 조제의 여행이다. 수족관은 못 보지만, 대신 바다를 보고, 물고기의 성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돌아온다. 부모와의 만남은 없다. 지친 것이다.
"깊고 깊은 바닷 속 그곳에서 헤엄쳐 나왔다. 그곳은 빛도 바람도 없고 정적만이 있지.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난 두번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아. 언제가 네가 사라지면 난 길 잃는 조개처럼 깊은 바닷속을 데굴데굴 돌아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데로 나쁘진 않아"
"마지막은 의외로 깨끗했다. 이별의 이유는 여러가지였지만, 아니 사실은 단 한가지다. 내가 도망친 것이다. 헤어져도 친구로 남는 여자도 있지만 조제는 아니다. 조제를 만날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두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다.
조제는 바닷속 깊은 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전동 휠체어를 타고 세상을 굴러다닐 것이다.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세상을 향해 살아가는 멋진 조제를 기대한다.
16 JUN 2017
2003년도 영화이지만 다시 돌이켜봐도 잘 만든 영화이다. 특히 장애를 가지고 간 사람이 세상과 소통을 하고, 독립적인 개체로 살아가는 멋있는 성장 드라마다. 찾아보니 마지막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영화 속의 남녀 두 주인공 모두 사랑스러운 캐릭터이다.
한번 더 쓴다. 나쁘진 않아!
"깊고 깊은 바닷 속 그곳에서 헤엄쳐 나왔다. 그곳은 빛도 바람도 없고 정적만이 있지.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난 두번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아. 언제가 네가 사라지면 난 길 잃는 조개처럼 깊은 바닷속을 데굴데굴 돌아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데로 나쁘진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