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보트 하우스(장정일)

junemustgo 2017. 2. 6. 12:50

15 AUG 2009

 

아담의 후일담


 책을 보니 <내게 거짓말을 해봐> 이후의 필화 사건을 치른 후에 쓴 글이다. 다시 김영사에 의해서 출판된 것으로 보인다. <아담이 눈뜰 때>의 후일담이라고 해서 아담이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했을까 궁금하다.

 

 여기에 나오는 작중 화자이자 이름이 "나는"이 전작인 거짓말에서의 제이인지 좀 헷갈린다. 그리고 아담이 제이이고 아담이 나는 인지도 좀 헷갈린다. (그다지 열심히 읽지 않았기에) 사실 장정일의 소설은 두 권 보았기에 이 글의 주인공은 장정일 자신인 것임에 확실하다. 그의 전작인 소설에 대한 소회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왜 타자기에 집착할까 생각해 보았다. 이미 나는 원고지를 지나서 타자기를 거치고 워드프로세스를 거치고 노트북 컴퓨터를 두대나 박살내지 않았나. 그것이 마라톤 타자기도 아니고 클로버 특정 모델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의 첫번째 소설에 나오는 뭉크의 화집과 턴테이블과 타자기란 말인가? 초심으로 돌아가서 작품을 하는 것인지 퇴행하는 것인지 보기 나름인 것 같다.

 

 90년대 시각으로 보더라도 장정일의 소설은 김기덕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이 불편한 점이 있다. 특히 젊은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불편하다. 여기에 나오는 젊은 남자와 늙은 남자 통털어 정상적인 사람은 없으니 남녀차별이라고 하기에도 그렇지만 마초가 아니라고 하기에도 자신이 없다. 어쨌던 대부분 인물들에 대한 비판이다.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고 정치인에 대한 비판, 혹은 돈에 대한, 악에 대한 비판이다.

 

 책 내용하고는 크게 관계가 없지만 카프카의 변신 내용이 서글펐다. 그리고 전당포 주인공을 죽인다는 것에 대한 도스트포예프스키 내용이 인용되고 있다. 무엇으로 변신하고 싶을까? 타자기!
 

 

6 FEB 2017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내용이 어떠했는지 잘 짐작할 수가 없다. 전작이고 영화화된 아담이 눈뜰 때와 이 소설의 내용을 이제는 구별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작가인 장정일이 표현한 1900년대의 방황하는 청춘 아담을 표현한 것이 일관되게 통하고 있다고 본다.  그것이 구월의 이틀에서 시대가 지난 형태로 나타나는 것으로 본다.